가슴, 있으나 마나
- sa Nagi
- 2024년 12월 23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2월 24일
by 밀레이
나의 몸은 우스꽝스럽다. 넓은 어깨와 살집이 붙은 엉덩이, 대조적으로 잘록한 허리, 가는 손목과 두툼한 허벅다리. 가장 우스운 부분은 단연 가슴이다. 왼쪽 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겨드랑이까지 이어지는 큰 수술 자국이 있다. 그리고 그 수술 자국 위로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의 눈썹 모양을 한 작은 수술 자국이 하나 더 있다. 마치 눈을 감은 얼굴 같은 모양새랄까?
나는 2021년 유방암 0기 진단을 받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 수술에 앞서 몇 년 전 15cm가량의 섬유 선종이 자리를 잘 못 잡아 일부 절제를 받아 눈썹이 먼저 생겨있었다.
여기서 많이 받는 질문. “0기면 심한 거 아니지 않아? 왜 전절제를 해야 해?” 0기의 경우 암 조직이 아직 덩어리처럼 모이지 않아 오히려 유방의 어디까지 암 조직이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없어 전절제와 겨드랑이 쪽 림프샘을 일부 제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그나마) 있던 가슴을 하나 보냈다.
운동선수로 활동하던 어린 시절, 브래지어는 땀만 차고 숨이 막혀 너무 불편했고, 집에 오면 벗어던지기 바빴다. 당시 커밍하웃하지 않은, 부치 정체성의 나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레 어깨가 굽었다. 헐렁한 옷, 구부정한 자세로 숨길 수 있는 정도의 가슴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볼까 두려워 억지로 브래지어 안에 나를 밀어 넣고는 했다.

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유방암 수술로 가슴 한쪽을 잃은 나는 자유를 찾았다. 핑계가 생긴 것이다. 브래지어가 수술 자국에 쓸려 “아프다. 불편하다.”는 핑계는 남은 나의 한쪽 가슴에 자유를 선물했다. 이러한 핑계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일부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데 너무 좋은 사유가 되었다. 지금도 믿기 힘들지만, 내가 브래지어 착용을 하지 않는 것에 관해 묻는 직장 동료가 실제로 존재해버렸다. 동성이기에 괜찮다고 생각하셨겠죠.. 당신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진료받으러 처음 대학 병원에 갔던 날, 의사 선생님의 진료 이후 ‘암 코디네이터’라는 분의 상담이 이어졌다. ‘암.. 코디네이터?’ 이름부터 너무나 생소했다. 그의 역할은 유방 절제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유방 재건 수술 계획을 제안하고, 재건 수술 거부 시 실리콘으로 된 유방 모형의 맞춤 제작을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물론 평생을 함께 살아온 유방 한쪽을 떠나보낸 사람 중의 일부는 가짜라도. 유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이유가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미혼이시니 유방 재건은 하실 거고..” 하고 말을 꺼냈다. 재건 수술에 대한 의지나 의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재건 수술의 부작용에 관해 물었다. 놀랍게도 유방 재건 수술의 가장 큰 부작용은 수술한 유방에 유방암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재건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예 모든 유방 조직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재발 우려가 없다고 하였다. 놀라웠다. 재발 암의 경우 초기 암보다 더욱 위험하다. 심지어 나 같은 초기 0기 환자의 경우 전절제로 수술을 하는 경우,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재건 수술을 하면 재발 위험이 있어 항암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나는 의문이 생겼다. ‘그에게 나는 환자 이전에 여성인 것인가? 재발 위험이 있음에도 당연히 재건 수술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도대체 가슴이 뭔데. 가슴이!!!’ 나는 망설임 없이 재건 수술과 실리콘 유방 둘 다 거부하였다. 그 대답에 굉장히 놀란 코디네이터 선생님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암과 관련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것을 알게 됐고, 유방과 난소 절제 수술을 선택했다. 절제 수술을 할 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출혈과 같은 위험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는 과감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발암요소(?)를 뿌리째 제거해 버리는 선택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여성의 조건일 유방을, 여성성의 상징 중 하나인 난소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한 노력을 선택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내가 입원했던 당시 나와 한 병실에 계셨던 환우 5분의 경우 모두 50대, 60대 여성이셨다. 코로나 19가 한창이었을 때라, 간병인 한 명 들어오지 못하고 환우들이 서로를 돌보는 상황이었다. 그분들은 나와 함께 입원해 있던 내내 펑펑 우셨다. “어쩌다 건강을 잃었을까?” 하는 후회 반, “내가 여자인데 가슴이 없어서 어떡해” 반. 난 그분들의 손을 잡아끌며 나가자고, 나가서 걷자고, 우리 일단 회복해야 하지 않냐고, 차가운 게 회복에 좋다던데 아이스크림 사주시라고 끌고 다니며 그들이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왔다. 퇴원 후 그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병원에 갇혀있던 이 주 정도의 시간 동안 마치 처음부터 가슴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훌훌 털어버리는 노력을 함께 했던 것으로 나의 기억에 남았다.
아무 일도 없이 나의 선택만으로 일어난 몸의 변화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뭐 어찌어찌 병은 생겨 버렸고, 어찌어찌 기분은 오히려 좋은 상태가 되었다. 파트너는 “찌찌였는데, 찌! 가 됐어”하고 우스꽝스러운 나의 몸을 보고 웃어주었다. 그래 뭐 어때, 어차피 있으나 마나. 내가 그들에게 여성이라 가슴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건강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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